다자이후 학교원은 ‘부(府)학교(다자이후의 학교)‘ 라고 불리며, 200명 이상의 ‘학생’, ‘의생(医生)’, ‘산생(算生)’이 힉압에 정진하던 곳입니다. 그들은 북부 규슈(현재의 후쿠오카현·사가현·나가사키현·구마모토현·오이타현)의 호족(豪族) 자제들이었습니다.
‘학생’은, 관리로서 필요한 교양과목으로서 『논어』, 『효경(孝経)』등 유교의 기본 문헌 등 을 배웠습니다.
‘의생’은 약이나 의료를 배워 의사가 되었습니다.
‘산생’은 산술을 연구하고, 계산이나 측량 등의 기술계 관료가 되었습니다.
[국가 사적]
다자이후에 있었던 관료 양성 기관의 유적입니다. 사이카이도(西海道-규슈지방의 옛 이름)의 각 지방 관료 자제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곳에 다자이후 장관 대리(大宰権帥) 관직에 있던 오에노 마사후시(大江匡房)가 책 『고우케시다이(江家次第)』에 “기비노 마키비(吉備真備-지방호족)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공자의 초상화가 안치된 시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자묘(孔子廟)에 대대로 심어져 내려오는 황련목의 수종을 공자의 후손들에게 받아 키온 것이 현도(県道) 길가에 심어져 있습니다. (2015년 여름에 태풍으로 3그루 중 2그루가 부러져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