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 문화재 다자이후 텐만구(신사)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미치자네(845-903년)는 어릴 때부터 시가(詩歌)에 재능을 보여, 나중에 천황이나 각료에게 강의하는 ‘문장박사(文章博士)’가 되었습니다. 정치가로서도 뛰어나, 결국 태정관 우대신(右大臣)까지 오릅니다. 하지만 901년, 음모로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다자이후로 좌천됩니다. 그리고 903년 2월25일, 실의에 빠져 지내다 59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다자이후에 매장되게 되었습니다. 매장지로 향하는 도중, 시신을 태운 가마의 소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곳을 묘지로 정했습니다. 이곳이 후에 다자이후 텐만구가 되었습니다.
미치자네가 좋은 문인·학자였기 때문에 후에 문예·학문의 신으로서 널리 숭상받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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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書跡:필적)
국가 중요문화재
(건조물)
처음에는 다자이후 장관 대리(大宰権帥) 관직으로 다자이후에서 서거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의 묘에서부터 시작되어, 텐만구 안락쿠지(天満宮安楽寺)라고도 불렸습니다. 헤이안(平安)시대(784~1185년)에는 중국에서 유래된 ‘곡수의 연(曲水の宴)’ 등의 행사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문인으로도 칭송받아 귀족과 무사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참배를 하였습니다. 문예의 성지가 되어 연가(連歌-두 사람 이상이 와카(和歌)의 상구와 하구를 서로 번갈아 읽는 형식의 노래) 등이 끊임없이 봉납되고 있습니다. 또한 당나라 서책인 ‘한원(翰苑)’의 헤이안 시대 사본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고려에서 보낸 사신인 ‘고유(高柔)’가 참배하고 시를 봉납하였습니다. 본전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통행사와 어우러진 경내에 들어서면 고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