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땅에 세워졌는가?
중국에 가까운 규슈 북부 ‘츠쿠시’ 땅은 옛날에는, 죠몬 시대(縄文時代)부터 중국과 교류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이나「後漢書東夷伝」에도 이토국(伊都国)과 奴国 등 북부 규슈의 지명이 등장하고 있으며, 후쿠오카시 시카노시마(志賀島)에서 중국의 한나라로부터 가지고 온 금인(金印)이 출토되었습니다.
텐지 천황(天智天皇) 시대, 백촌강(한국 서해안) 전투에서 대패하여, 당나라와 신라의 침공을 대비해 츠쿠시(筑紫)에 요새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미즈키(성)·오노성(大野城) 기이성(基肄城)입니다.
하지만 다음 천무·지토 천황(天武・持統天皇) 시대가 되자 긴장 상태도 완화되어 그 안쪽에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규슈의 정치의 중심이자 또한 외국과의 외교・교역을 위한 도시였습니다.
이것이 “서쪽 수도”의 시작입니다.
이 당시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동아시아의 선단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일본에서도 아와타 마사토(粟田真人)가 견당사로 당나라를 방문, 장안의 도시 구조를 보고 문화와 문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장안을 모델로 일본의 중심이었던 나라(奈良)의 헤이조쿄를 세우고 다자이후에서도 도시를 다시 정비하였습니다.
이렇게 외국 사절을 훌륭하게 맞이할 수 있는 그야말로 국제도시 “서쪽 수도 다자이후”가 탄생했습니다.